'인생'에 해당되는 글 4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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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1
드럽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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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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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가歌>주酒>무舞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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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1
특별활동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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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5
안녕, 아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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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남들처럼 해서 미안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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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결국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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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2
1998-2008 영화 베스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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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3
예상과 단상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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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1
전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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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8
오빠?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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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7
자신감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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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결단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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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네멋대로 행복하라-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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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아 진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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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7
잠이 안와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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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2
상실감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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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6
반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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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5
이렇게(+추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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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7
단물
(4)
드럽다.
세상이 드럽다.아니다, 그 세상을 채우고 있는 인간들이 드럽다.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던, 나에게 세상의 무서움, 사람의 무서움을 알게 해주었던 그 사건이.
엄마는 원래 세상이 그런 거고, 그럴 때마다 포기하고 움츠러들면 니가 지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 엄마처럼 살게 되는 거라고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아마 다들 그럴 거다. 자기들처럼 힘들게 살지 말라고 더 공부시키고 뼈빠지게 뒷바라지하시고 그랬을 거다.
그러니까 자식인 나는 견디고 이겨내야하는 거겠지. 근데 모르겠다. 참고 있는다고 그게 이기는 건가? 그건 아닌 거 같다. 잘못된 점은 고치고, 아니 적어도 고치려고 노력해야되는 거 아닌가? 물론, 세상을 바꾸기보다 세상에 맞춰가는 편이 더 편하겠지. 근데, 멀리 보면, 세상을 바꾸면 더 편해질 게 아닌가? 더 편해질 수 있는데 왜 바꾸지 않고 거기에 맞추고 순응해가야되는 건가? 나는 오늘 그런 의문이 든다..
이 드럽고 치사한 돈벌이 시장에서 좀 멀어져보고 싶다.
숲 속에 있으면 숲을 볼 수 없다니까, 숲 밖으로 나가면 숲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먹고 살 일이 걱정이긴 하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거, 원하는 거, 목표하는 바, 에 대해서 생각해야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20대는 뚜렷한 목표의식없이 살아온 거 같은데.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건 아닐까?
내가 정말 배가 덜 고파서 이러는 건가?
지긋지긋하고 참 드럽다.
내가 성별을 결정할 수 있었다면 나는 남자를 택했을 거다. 그랬으면 우리 엄마가 할머니한테 그렇게 안당하고 살았을 거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도 4년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갔을 거고, 대학 가서도 열심히 일해서 엄마 용돈도 주고 그랬을 거다. 군대? 우리 집엔 남자가 나밖에 없었을테니 군은 면제거나 갔더라도 더 열심히 군생활했을거다. 그리고 취직도 더 잘했을 거고, 그리고 여자라서 겪는 수모와 희롱은 겪지 않아도 됐을거고....그리고, 그리고...
당한 본인도 안우는데, 내가 울어버렸다. 울면서도 내내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울면 안되는데, 눈물이 나왔다.
세상이 참 그지같고, 사는 게 참 그지같다.
진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되는가..싶다.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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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끝났다.
작년과는 또 다르다.
올해는 뭔가 달랐다.
아마 돌아오는 길이 혼자여서 그랬나보다.
예상과 달리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마지막날만 혼자였는데,
그 시간이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하고 특별했던 거 같다.
많은 생각을 했는데...
오늘 회사로 돌아가니 나는 또 제자리인가 싶다.
생각은 많고
하루는 또 이렇게 저물어버렸다.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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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님, 지다님, 노나또님이 음주가무에 대한 포스팅 하셔서 나도나도!
(근데 키드님은 안하심? 아님 벌써 하셨나?)
현재 나의 음주가무 순위를 매기자면, 가歌>주酒>무舞 정도 되겠다.
고등학교 다닐 땐 술을 아예 못하고, 싫어해서 가>>>무=주 였는데, 25살 넘어서부터였나?그때부턴 가>주≥무 순인듯.
일단 나의 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버지가 생전에 술고래로 유명하셨기 때문에, 나는 술을 너무너무 싫어했다. 중학교 때던가, 수학여행때 애들이 선생님 승인 하에 술을 잔뜩 마셨는데, 술냄새에 취해서 두통과 구역질이 났었다. 고등학교 때는 술 안마시고도 노래하고 춤추고(단독아니고 다른 애들과 뭉쳐서!) 잘 놀았다. (가>무>주). 수능 끝나고 졸업여행 갔을 때 처음 술 마시고 완전 취해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잘 기억 안나지만 엄마한테 울면서 미안하다고 그런 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대체 뭐가 미안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수능점수도 생각보다 잘 나왔는데;;) 대학때도 술 마시고 정신줄 놓는게 꼴사납다고 생각해서 거의 안마셨고, 그래서 선배들이나 동아리, 모임과 등돌리고 혼자 놀기 시작했다. 과에선 아웃사이더라 불렸음;;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까 그런 애들끼리 모여서 끼리끼리 놀게 되었다. (이때도 가>무>주)
졸업하고 일하면서 아무래도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역시 술이 약해서 회식자리 같은데선 항상 곤란했다. 맥주도 간신히 마시는데, 소주로 원샷, 파도타기를 시키니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거. 어떤 회사에서는 술 못 마신다고 맨날 구박하고, 어떤 데서는 아예 회식자리에서 빼버리고 그랬다. 그래서 나름 생존본능으로 바로 전(前)직장에서부터는 안마셔도 마신 것처럼 놀아줬다. 그랬더니 좋아라 하더라. 물론 전직장이 술을 권하기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하는 분위기여서 그랬을지도. 이때의 음주가무 순위는 가=무>주.
그리고 지금 회사로 옮기면서부터는 춤 출 일은 별로 없어지고, 술마실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작년의 경우 순위가 주>가>무로 역전. 그래도 술이 쎄졌다기보다는 술을 자주 마신다는 의미. 아마 같이 술을 먹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다른 거 같다. 지금 직장에선 주로 동갑인 여직원하고 술 마시러 가는데, 술마시고 노래부르기 좋아해서 주>가>>>무 인 거. 여직원이 노래 잘 불러서 노래방 가면 재밌다. 그리고 전직장 사람들(여자만) 만나면 술마시고 노래 부르러 가거나 춤추러도 가는데, 모이는 사람들이 다들 술이 엄청 쎄서(내가 너무 약한 건가?) 나도 많이 마시게 되고 1차 2차 3차는 기본이다. 이 모임에서는 주>가=무 가 됨. 내가 술 취해서 정신줄 놓는 건 보통 이 모임 사람들.
아무튼, 요즘은 그래도 주량도 늘고 술도 술자리도 즐기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술에 약한 나는 술보다는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거 같다. 그리고 모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음주가무 순위가 결정되고. 빈도가 아니라 능숙도로 보자면, 노래는 못하는 건 아니지만, 딱히 잘한다고 보기 어렵고. 춤은 잘 춘다는 소리는 못들어봤지만, 벨로님처럼 못춘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그래도 내가 추는 춤은 그냥 리듬을 타면서 율동을 하는 거. ㅋ 술은 약해도 전에는 집에서 맥주 홀짝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최근엔 한달에 한번 마실까 말까.
밥먹고 졸려져서 또 이렇게 급마무리.
근데 진짜 키드님은 어떤 춤을 추는건지 궁금. 이효리 섹시댄스같은 걸 추지는 않으실테고...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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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다님 포스팅에서 트랙백했음.>
내 학창시절 특별활동은 일관성이 없다.
초등학교때 기억나는 건, 미술부. 5학년 6학년 때 들었다. 학교가 작고 학생수도 없어서 특활이 많지도 않았는데, 나는 미술부가 좋았다. 풍경화나 정물화가 내 전문.(초딩 주제에 전문이래;;) 6학년때 자기 짝꿍 그리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때 그 짝꿍 얼굴 그리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무슨 건축도면이라도 그리듯이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 당시 친구들 평은 잘 그렸다가 아니라 '이상하다'였다. 왜냐면 너무 똑같이 그려서. ㅋㅋ
쓰다보니 생각났다. 초등학교 2학년때도 그림에 관심이 많았는데, 내가 놀면서 그린 그림을 보고 나랑 동갑이었던 우리 주인집 여자애(1층에 세들어 살았음)가 보고 따라그려서 상을 탔었다. 물론 비싼 물감과 크레파스로 그려서 제출했기 때문이겠지. 어린 마음에 꽤 상처받았다. 당시의 대회라는 것은 나같은 아이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선생 추천제) 담임선생님한테 쟤가 내가 그린 그림 따라했다고 말했더니, 선생님은 그냥 달래주셨다. 그래, 그때부터 세상은 있는 놈들 차지였다...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초딩시절 미술부 수업이 좋았고, 붓하고 도화지도 좋았다. 특히 풍경화 그리는 게 좋았다. 숲에서 멍하니 나무를 보며 그림을 그릴땐 시간가는 줄 몰랐으니까.
중학교에 가도 미술부에 들어야지! 했다. 일단 미술부 선생님이 첫 시간에 왜 미술부에 들었냐고 학생들에게 질문했는데, 그때 내가 넘치는 의욕으로 미술선생님께 정물화를 배우고 싶다고 했었다. 근데 뭐 그 선생님이 딱히 학생들을 많이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 특활시간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면 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혼자 정물화 교본도 사고, 좋은 붓도 사러가고 했다. 일년에 두번 지역 예술제(?)가 있어서 미술반도 그걸 준비하게 되었는데, 나는 정물화 연습하고 작품활동에 돌입!
그런데, 이상한 음악선생이 여자애들을 죄다 끌어다가 합창연습을 시키는 게 아닌가. 나는 작품준비해야되는데 어쩌냐고 미술선생님한테 물어보니까 합창대회는 의무적으로 학교가 출전하기로 했기 때문에 자기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결국 나는 합창연습하고 따로 남아서 작품활동...
그게 중1때인지 중2때인지 모르겠는데, 암튼 그렇게해서 장려상탔다!^^V
합창은 메조 소프라노 했고, 나는 음정 잘 못 따라가는데 목소리는 커서 자꾸 지적당했고. (사실 하기 싫어서 일부러 못하는 척도 해봤다 ㅋ)
그치만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아니었다. 미술로서의 내 수상경력은 그게 다니까. 초등학교 때도 미술보다 글짓기로 상탄 적이 더 많고, 고등학교 때도 미술과는 담쌓고, 글쓰는 것에 주력했다. (독후감 써서 도서상품권 받았음 ^^V)
암튼 중학 3년동안 내 소속은 공식적으로는 미술반이었지만, 비공식으로는 합창반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때 신문부 들려고 하다가 떨어지고, 그리고나서 영화감상부 들려다가 인원수로 짤리고, 결국에 든 게 무슨 공예부. 직조 공예? 암튼 발판 하나 만들었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면접이나 시험보고 들어가야하는 체육관련부나 신문부, 방송부 빼면 인원수로 짤리는 부서가 많았다. 가위바위보로 이기면 들어갈 수 있는데 맨날 졌음.;;
다음해엔 팝송부 들고 싶었는데 또 짤리고, 시감상부 들려다가 짤리고, 결국 종이접기부. 재미는 있었는데, 좀 유치하달까? 색종이를 만질 나이는 지났는데...막 이러면서 했다.
(중간에 기억 안나네;;)
그래도 고등학교때는 학교 특별활동이 아니어도 취미가 같은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면서 특활 했으니까 그걸로 됐다. 만화책 돌려보고, Next좋아하는 애들끼리 잠실로 공연보러 가고, 특활 아니어도 재밌었다.
그나저나 생각해보니까 논술반(특활 아니고 그냥 특별반)에서 선생님이 나한테 맨날 하던 말, 마무리가 안된다고. 역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렇게 또 급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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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빠
Goldfish went on vacation
글쓴이 : 패티 댄
옮긴이 : 이선미
펴낸이 : 예담
읽은 날 : 2008.06.03
다행히 책 받은지 한달은 안넘겨서 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원제가 '금붕어가 휴가를 갔다'였다. 아마도 책에 실린 이야기 중, 자식이 기르던 금붕어가 죽은 사실에 대해 부모가 '금붕어가 휴가라도 갔나보다'고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것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다.
부모들은 혹은 우리들은 가슴 아픈 현실(상실)과 마주하기 싫어서 스스로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데, 모른 척 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결코 산뜻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거다. 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 앞에 문제가 있을때 그것을 피해서 지나갈 지, 아니면 그 문제를 부수든, 던져버리든 끝장을 보고 지나갈 지에 따라서 또 다른 인생길이 열린다. 내 경우엔 어떤 면은 확실히 집고 가는 반면에, 어떤 것은 그냥 방치해두고 어영부영 넘어가기도 한다. 어영부영 넘기고 있는 그런 일들이 나중에 썩고 냄새나는 어떤 문제로 떠오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금붕어가 죽은 사실에 대해서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를 알려주자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자식이 어리다고 해서 가슴아파할까봐, 혹은 안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좋다는 것이다. 죽음이 우리의 일상에서 굉장히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살면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부모들이다. 그것이 일상임을 어릴 때부터 알려준다고 해서 자식이 삐뚤어지는 것은 아닐게다.
아무튼, 모든 상실감에 마주해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너무도 담담하게 눈물 흘릴 여지도 주지 않는 작가의 문체를 참으로 잘 살린 번역인 것 같았다.
<<옮긴이 추천의 글 중에서>>
인생이라는 영화 한 편에는 기쁜 장면도 슬픈 장면도 모두 다 섞여 있다. 그래서 기쁜 곳만 바라보고 슬픔이 올 때 한쪽 눈을 감아버린다면,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안녕, 아빠》는 자신은 물론이고 어린 아들에게도 인생의 슬픔을 마주볼 기회를 주는 한 어머니의 기록이다. 기쁨의 환희, 슬픔의 애상 등을 마음창고에 빼놓지 않고 담아두어야 훗날 꺼내어보고 자신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예기치 못한 이별은 너무 아프다.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못 다한 말이 많은데, 이렇게나 그리운데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 모두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고, 그러려면 슬픔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겠지. 바로 패티네 세 식구가 그랬던 것처럼.
<<밑줄긋기>>
◆ 부모님이 아픈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돌볼 때 주의해야 하는 세가지가 있어요. 우선 아이들은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아프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자기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냐고 반복해서 물어올 겁니다
둘째,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백번이고 말해줘도 자기가 같은 병에 걸릴까봐 걱정을 해요. 셋째, 정말 아플 수도 있고 관심을 끌기 위해 아픈 척할 수도 있어요.
◆ 만약 누군가 햇살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오는 버스를 처음 탔다고 생각해봐요. 이런 경우에 그 사람에게 도착하게 될 장소를 설명해주는 게 도움이 되죠. 왜냐하면 제일 처음 보게 될 터미널 풍경이라는 것이 그 사람이 마음 속에 그리고 있던 뉴욕과 많이 다를 테니까요.① 절대 아름답지 않은 곳이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건너뛸 수는 없잖아요. 터미널을 거치지 않으면 뉴욕에 들어설 수조차 없으니까요.
(사족)
①=>왜냐하면 제일 처음 보게 될 터미널 풍경은 그 사람이 마음 속에 그리고 있던 뉴욕의 풍경과 많이 다를 테니까요.
라고 해도 좋았을 듯 ^^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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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남들처럼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한마디로 용기를 얻거나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버려서 미안했다. 나도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밖에 해줄 수 없는 게 미안하다.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그런 이야기는 남들도 해줄 수 있는 거니까, 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도 그런 말밖에 못해줘서 미안하다.
어릴 때 어른들이 우리집에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나한테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어머니한테 잘해라.' 라는 거. 물론, 극소수의 내가 좋아했던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진심으로 느껴졌고,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거, 그건 기분 나빴다. 나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내가 아무런 못된 짓도 안했는데 뭘 더 잘하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다른 편부모 가정에 비해 나는 얼마나 착한 아이였는가. (자만이 아니라)소위 말하는 불량한 아이도 아니었고, 나름대로는 학교에서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듣는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항상 그렇게 말했다. '엄마한테 잘하라'고. 한창 사춘기 때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흥, 그러는 지들이나 우리 엄마한테 잘하라고 하지. 지들이 뭘 해줬다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라고. 솔직히 그렇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 집(자매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그렇게 얘기 안했을 거다. 막판에 우리 막내가 좀 막 나가서 그렇지, (사실 그건 정말 막 나가는 것에 비하면 눈꼽만치지만) 우리 자매들은 진짜 다 착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존경하던 담임선생님께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드렸었다.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너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너를 판단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너 자신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 생각으론 머지않아 네 자신이 단단해지면, 그런 말을 가려듣는 귀를 갖게 될 것이다.
라고..하지만, 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리, 나는 지금도 삐딱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물렁한 인간이 되어있다. 줏대도 없고 귀도 얇은 거 같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어른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잘해라'라는 것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그 한마디밖에 못했던 어른들을 이해하게 되었달까..
그리고, 내가 오늘 그애에게 해준 이야기는 상투적인 이야기였지만, 상투적인 뜻은 아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후회하고 슬퍼할 수 밖에 없다는 건 안다. 나도 겪은 일이니까 정말 잘 안다. 그런데, 그러고있을 사이에 곁에 계신 어머니는 어떨까. 삶이 막막한 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꼭 책임감이나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을 소중히 해야된다는 거다. 슬픔에 잠겨있을 시간이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럴때는 그냥 앞으로는 후회가 남지 않게, 정말 열심히 살아야되는 거다.
힘내라 나의 사랑하는 동생아.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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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좋은 예감이 들었었는데, 결국엔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가 아끼는 동생이었고, 그 동생의 좋은 아버지셨다.
뭐라고 말해줘야할 지 모르겠고, 내가 뭘 해줘야하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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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몇 개 '탁'하고 떠오르는 건 있었는데,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러 영화가 떠올랐고, 그래서 영화 본 연도별로 정리해봤다. (기억보다 기록에 의존하는 나;) 어떤 영화는 보기는 많이 봤는데 언제 봤는지 기억이 안나서 뒷편으로 몰아 썼다.
#무지 길지만, 이거 다 나한테는 베스트임!ㅋㅋㅋㅋㅋ
1998년
쉘로우 그레이브, 타락천사, 중경삼림, 펄프픽션, 춘광사설, Knocking on heaven's door, 친니친니
1998년도는 내가 고3이었던 해였다. 어른들은 열심히 공부만 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해의 다이어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성적과 공부에 관한 것보다 만화, 영화, 음악...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사실 내 생애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때는 고3때가 아니라, 중3때였다. 중3때는 오히려 단순했고, 놀 줄도 몰랐고, 놀만 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다이어리를 꽤 열심히 썼기 때문에 그 기록을 참조했다. 아, 그리고 거의 비디오로 봤다. 주변 환경상 극장에서 영화보기가 쉽지 않았다.
쉘로우 그레이브
대니 보일 영화의 특징 : 친구, 돈, 여자. 항시 여자란 요망하고 비열하게 나온다. 친구와 돈..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 스포팅에서는 자신의 친구들을 배신해야먄 돈을 얻을 수 있었다.
- 다이어리에서
당시 '트레인스포팅'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았던 듯 하다. (대니 보일 3부작이라고 써놓고 연속으로 영화감상이 쓰여있는 다이어리) 당시에는 상당히 괜찮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생각했는데..모든 것이 처음처럼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 하여간, 당시 나에게는 남자들의 세계관이란 저런 것인가..하는 회의감까지 들게 만들었던 영화.
타락천사, 중경삼림=> 4~5번 봤다고 쓰여있다. 그 후에도 더 보았으니 아마 적어도 10번은 봤겠지. 근데도 대사 같은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영상이 더 기억에 남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그 당시의 왕가위 영화보다 더 진하게 잔상이 남는 영화는 없는 것 같다.
펄프픽션
보면서 메모했는지 등장인물들의 특성, 인상적인 장면등이 자세히 쓰여있었다. 이 영화는 타란티노 영화 중에 가장 볼만 한 영화였는데, 그 후로는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그나저나 요즘 타란티노씨 뭐하시나?
조폭이 저런 아동틱한 프린트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서 그것도 참 웃겼다. 강도커플의 대사들도 웃겼는데 잘 기억은 안난다.
해피투게더(춘광사설)
기억에 남는 대사가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라고 써있는데, 이 영화 본 지 오래되서 지금은 그 대사가 어떤 의미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나는 당시 동성애에 대해서도 무지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봤어도 본 게 아닌 거다. (물론, 동성애에 대한 어떤 인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뭔가 달라지진 않았을 거 같긴 하다. 삭제된 장면이 많다고 하니까.) 영화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고, 그냥 음악이 좋아서 ost를 구입했던 영화.
Knocking on heaven's door
이 영화는 단연 음악이 좋았지만, 영화 자체의 이야기도 좋았다. 파도소리도 아직 기억나고..마지막 장면에서 엄청 울었는데 다음날 엄마가 왜 울었냐고 물었는데 대답 안하고 딴얘기로 얼버무린 기억이 있다.
여자들이 주인공인 버디무비로 '델마와 루이스'가 좋다면, 남자들이 주인공인 것은 이 영화가 최고!
극중 인물 중에 보스가 했던 대사가 좋았다.
천국에서 주제는 하나다, 바다지.
노을이 질 때
불덩이가 바다로 녹아드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은
촛불같은
마음속의 불꽃이야
-다이어리에서
친니친니
1998년에 아마(?)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영화가 이 영화일 것이다. 당시 금성무의 팬이었던 나는 금성무가 나온 영화는 모두 봐야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이런 걸 팬심이라 하나?ㅋ) 이 영화는 1998년11월21일에 봤다고 쓰여있다. 아마 수능(11/18)이 끝나고 혼자 극장에 가서 봤던 거 같다. 금성무가 연기한 '첸가후'라는 인물은 과묵하고 감정표현에 서툰 사람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그런 사람이 이상형이었다. 첸가후가 너무 마음에 들어, 그 후 인터넷통신(channel-i) 아이디를 가후gahou라고 만들어서 썼다. 근데, 대학에서 중국어를 좀 공부했더니만, 첸가후(중국 발음)의 한자표기가 '家富=gafu'라는 걸 알았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고치고 그냥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어디 새로운 곳에 가입하면 gahou 를 아이디로 쓴다. 저 장면은 바흐의 '안나막달레나를 위한 소품집(맞나?)'이란 피아노곡을 듣고 있는 것. 영화에 나온 그 피아노곡을 진혜림이 'Lover's Concerto'라는 노래로 불러 ost집에도 들어있었다. (OST도 샀음)
1999년
러브레터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본 일본영화. (기타노 타케시 영화같은 거 말고)
엄청 질도 안좋은 후진 비디오테잎으로 빌려봤는데, 당시 일본어 완전 초보라 자막이 없는 상태에서 봤더니, 내용이 이해가 안되는 거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대본 다운받아서 다시 보고 내용을 알았음. 말도 못 알아듣는데, 똑같은 배우가 2인역을 하니 당췌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
배우들도 좋았고(남자 후지이 이츠키 역을 한 '카시와바라 타카시'팬클럽도 들었었음. ㅋㅋ), 음악도 좋았고, 배경으로 나오는 홋카이도도 무척 아름다웠다. 덕분에 일본의 겨울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환상은 무참히 깨져버렸고, 엄청난 눈과 실내의 추위가 말도 못하더라. (잘 때도 양말신고 잤음)
또, 이 영화는 하도 많이 봐서 대사까지 거의 외운다. 전체적으로 다는 아니고, 상황별로..;;
지금은 좀 식상하지만(순수함을 잃었어;;), 그래도 참 예쁜 영화였다. 비디오로 몇번이나 봤는데도,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기념삼아 또 봤음. ㅡㅡV
2000년
박하사탕, 도그마, 데스티네이션, 스크림
박하사탕
2000년 1월 1일 0시 개봉. (12/31 밤12시)
밀레니엄이다 뭐다 전세계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개봉한 박하사탕. 새로운 시대다, 어쩐다 해서 들뜬 사람들도 있었고, 이제 곧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박하사탕의 주인공이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입이 찢어져라 외쳐보아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여전히 세상은 요모양 요꼴이다.
개봉날에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보신각의 종소리는 가족과 편안한 집에서 들어야한다는 생각에 개봉날에 맞춰보진 못했다. 이창동 감독은 관객을 씁쓸하고 눈물나도록 서럽게 울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데(초록 물고기 때부터), 이 영화도 그랬다. 눈물이 나는 걸 굳이 안 울려고 용썼던 기억이 있다.
도그마 : 케빈 스미스 감독의 영화 중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유명한 영화일까? 벤에플렉과 맷데이먼이 주연을 맡아서 배우덕을 좀 본 것 같다. (그리고보니, 나 이 사람 영화 꽤 많이 봤네. 근데 진짜 웃기거든~ㅋㅋ)
암튼, 나는 꽤 재밌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뭐 이런 영화가 있냐, 피가 너무 많이 나온다며 싫어했다. (비디오로 봄) 하느님(GOD)역으로 앨라니스 모리셋이 나오기도 했음.
데스티네이션Final Destination
공포영화 꽤 좋아하고 즐기는데, 스크림 이후로 괜찮은 영화가 없었다. 이 영화 보면서 상당히 감탄했다. 동서양의 조합이랄까? 할리웃의 스케일, 각종효과와 동양적 사상이 결합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국 죽을 놈은 죽게 되어있다는 동양적 사상? 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사상? 말 안되나? 뭐 암튼,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 보는 내내 긴장해서 극장에서 나올때는 어깨가 뻐근했으니까.
속편들은 좀 지루해서 챙겨보지 못했지만..
스크림 시리즈 : 위에서 스크림 이야기가 나와서 찾아보니, 2000년에 스크림3편도 개봉했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1편은 집에서 보고 2,3편은 극장가서 챙겨봤던 거 같다. 아, 이런 공포영화는 이제 없나? 무섭기만 한게 아니라, 웃긴 공포영화로는 최고다!
2001년=>기억안남
2002년
어바웃어보이
닉 혼비보다 휴 그랜트 때문에 봤는데, 영화보고나서 감독이름을 알아서 작품을 찾아보니, High Fidelity(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도 있었다. 두 편 다 상당히 맘에 드는 영화.
어찌보면 빈둥대는 백수와 예민한 소년의 버디무비라고도 볼 수 있음.
이 영화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마크(니콜라스 홀트)는 엄청나게 성장해서 이제는 청년이 되었다. 완전 훈남으로 성장한 마크. Skins 라는 드라마에서 바람둥이, 재수탱이로 나오는데, 그래도 멋있더라. 녀석의 영국 액센트가 귀에 콕콕 박히더라~크~
2003년=>기억안남
2004년
Before Sunset, 거미숲, 슈렉2, 러브 액츄얼리, 빵과 장미
Before Sunset
2004년 11월쯤 종로에 있는 극장에서 친구랑 본 거 같다. 같이 본 친구는 Before Sunrise도 안봤는데 괜찮을지 걱정했는데, 영화보고 나서 오히려 나보다 더 좋아했다. 나는 주인공들 이름(제시, 셀린느)도 잘 기억못했는데, 친구는 기억도 잘하고!
아, 그리고 영화 끝나고 화장실 가서 둘이 이런 저런 얘기하는데, 모르는 여자분이 이야기 도중 끼어들어와서, 화장실에서 짧게 영화에 대한 서로의 감상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ㅎㅎ
Before Sunrise 때와는 달라진 주인공들의 얼굴에서 세월을 느꼈고, 영화 내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이들의 "대화"가, 대화를 하며 만들어내는 그들만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치만, 영화가 아닌 실재라면 제시 부인이 너무 불쌍하다. 애도 낳고 나름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을텐데, 남편은 밖에 나가서 옛날 여자나 만나서 신나있고...으휴.
거미숲(베스트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영화를 하나 넣어야겠다는 압박감에..)
송일곤 감독이 좋았고, 감우성이 좋아서 찾아본 영화. (여자 주인공은 별로.)
일단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내지만, 조금 놓치면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상당히 집중하면서 봤던 영화다. 영화니까 조금은 비현실적인 걸 보여줘도 됐을텐데 보기 싫은 현실로 이끌고가서 좀 슬펐다.
요즘.. 송일곤 감독은 뭐하지?
슈렉2
이건 친구랑 극장에서 박장대소하며 봤다. 영화취향이 까다로운 친구가 맘에 들어해서 더욱 기뻤던! 1편보다 2편이 더 재밌기도 했고. 재미의 원인은 아무래도 '장화신은 고양이'. 눈을 반짝이며 귀여운 척, 불쌍한 척 하는 그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ㅋㅋ 참, 1편도 좋았는데, 피오나 공주가 마법에서 풀려서 미인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상태 그대로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3편에선 슈렉 베이비도 나오는데 역시 새끼들은 다 귀여운 거 같다 ㅎㅎ
러브 액츄얼리
이만한 염장 영화가 없다. 음악선곡도 좋았고, 배우들도 좋았다(특히 그 꼬마-토마스 생스터-가 상사병 걸려서 괴로워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여러가지 사랑이야기가 나오는데, 총리(수상)과 비서, 소설가와 도우미, 두 꼬마, 상사와 부하의 불륜, 야한 영화의 단역배우 커플, 친구의 부인을 사랑하는 남자, 매니저를 사랑하는 스타, 회사 동료..등.
하여간 크리스마스 같은 때는 이런 영화가 좋은 거 같다. 행복해지기도 하고.
빵과 장미
이 영화는 비디오로 빌려서 한번 보고, 반납하기 전에 다시 한번 더 봤었다.
저 포스터는 좀 맘에 안들지만, 어쩔 수 없이 올림. 나는 굉장히 심각하게 봤는데(굳이 코미디 장르로 치자면 블랙코미디?), 포스터를 무슨 로맨틱 코미디물처럼 만들어놨다.
중요한 건, 인간에겐 빵도 장미도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 물론, 어느 학자가 주장하듯, 1차적 욕구가 충족되면 더 고차원의 욕구를 추구한다는 피라미드 이론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내가 바로 그 표본), 그 이론에 따른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건 실제로는 1차원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추구할 수 있다는 거다. 즉, 누구나 배고픔을 느끼듯,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느낄 줄 안다는 거다. 그 욕구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거.
※내가 더 슬펐던 것은 노동자들의 전체 문제나 처우개선 등의 문제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여자(마야)의 언니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도망간 아버지때문에 생계수단이 없어진 그 열몇살 여자애가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아무말도 못하고 몸을 팔면서 가족들을 먹여살렸다고 얘기하는 부분이었다. 마야는 몰랐다고, 전혀 몰랐다고 했지만...사실은 알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다이어리에서
2005년
연애의 목적,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연애의 목적
뭐랄까, 연애의 목적은 홍상수 영화보다 덜 괴로운 현실적 연애이야기였달까. 홍(강혜정)의 '불면증'과 '닭강정'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홍이 유림(박해일)을 싫다고 싫다고 하지만, 유림과 있을 때는 잠이 드는..알 수 없는 여자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여자인데도 여자 마음을 모르는 거?) 그치만 껄렁껄렁대는 박해일은 싫었음. 박해일은 그냥 선하고 맑은 역할 했으면 좋겠다. 굳이 악역을 하겠다면 악의 없이 사람들한테 폐 끼치는 캐릭터라든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소피아 코폴라(女)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감독에 대해 전혀 모르다가, 나중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이라는 걸 알았다. 아버지가 유명해서 딸도 빛을 받는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만 봤을때 나는 상당히 좋았다. 잘 짜여진 구성과 이야기 구조가 아닌 어설픈 맛도 좋았고 일본이라는 배경도 좋았다. 아마 스칼렛 요한슨이란 배우의 매력 때 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많았는데, 제일 맘에 든 건 빌 머레이가 스칼렛 요한슨의 발을 잡고 자는 저 장면(위 사진).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저렇게 한번 해봐야지 했는데, 시도조차 못해봤다. 아무래도 내가 저렇게 새우잠을 자는 게 불가능할 듯.
아래 사진은 헤어지면서 귓속말하는 장면.
분명 사랑한다고 했을 거 같다. (해피 엔딩 선호)
2006년
브로크백마운틴, 이터널 선샤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왕의 남자
브로크백마운틴
음악도 좋았고, 넓은 산과 들판의 모습도 좋았고, 배우들도 좋았다.
이 영화는 보기 전부터 울 것 같아서 일부러 혼자 보러 가서는 펑펑 울고 나왔다. 극장 안에는 나 말고도 더 펑펑 우는 사람이 있어서 덜 창피했고. 어떤 의미로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다. 다시 보면 분명 또 엄청 괴롭게 울 것 같으므로. (라고 해도 2006년에도 이미 2번이나 봤었던.)
이터널 선샤인
뒤져보니 2005년에 처음 보고, 시네코아 고별전에 가서 또 봤다. 게다가 계속 혼자서. 2006년 당시의 내 상태를 다이어리에 "Iternal Sunshine Effect"라고 써놨었다. 전남친이랑 사귀기 전에 봤을 땐 울지 않았는데(극장에서 봤을 땐), 헤어지고나서 집에서 다시 봤을 땐 엄청 눈물이 쏟아져서 일시중지 시켜놓고 이불쓰고 엉엉 울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소설을 미리 읽었을 때, 강동원이 과연 어울릴까 생각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특히 원래 강동원의 투박한 사투리가 맘에 들었다. 이나영은 내가 소설 읽으면서 상상한 것보다 너무 어려보였고.
왕의 남자 : 괜찮은 영화였다. 당시 사귀던 사람(전남친)이랑 봤는데 영화보면서 운다고 신기해했음.(근데 그 정도는 운 게 아니라, 글썽인 정도였다. 울면 장난 아니게 추함.)
2007년
두번째 사랑, 자아의 불일치, 카모메 식당
두번째 사랑
이거 포스팅할 당시에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소개팅했던 남자랑 봤었다. 이 영화를 볼 때까지만 해도 '어쩌면' 그 남자랑 그대로 잘 만날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나는 이 영화에 상당히 감동받았고, 그 남자는 잘 모르겠다는 감상이었다. 그 사람은 불륜에 초점을 맞췄고, 나는 연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 사랑은 변하는 건가...라는 회의감도 드는군.
자아의 불일치
'터질꺼야'라는 웃기는 제목으로 나왔지만, 어쨌건 토룡주민들에게 꼭 추천하고싶은 영화. 극장에선 인기가 별로 없었던 모양인데, 이 영화는 '버럭'하는 성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적극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코엑스까지 혼자 가서 봤던 거 같다.
카모메 식당
지다님 추천으로 본 영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뭔가 비현실적이면서 단순한 대사처리가 맘에 들었다. 이건 집에서 봤는데, '안경'은 극장에 찾아가서 봤다.
수면의 과학 : 이 영화도 좋았지만, 베스트까지는 아니었다.
극락도 살인사건 : 상당히 맘에 들었지만, 한국영화는 '두번째 사랑'이 있었으므로 2위로 아쉽게 탈락.
타인의 삶 : 베스트로 치기에는 웃음이 부족했던 영화.
트랜스포머 : 블럭버스터 영화 중 최고. 2편 언제 나오지?
다이하드4.0 : 돌아온 존 맥클레인. 브루스 윌리스도 주사 맞나? 근육이~어이구야~..
2008년
추격자
5월 현재까지 부동의 1위(2008년 베스트 영화)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몇 달동안 이 영화보다 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가 나오기를 바란다. (바빠서 극장엔 자주 못 갈 지언정.)
처음 본 연도가 생각안나는 영화들
4월 이야기, Before Sunrise, 와니와 준하, 미술관옆 동물원, 봄날은 간다
4월 이야기
이와이 슌지 영화는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해서, '그때가 좋았지~' 라고 생각하며 추억에 잠기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보다는 현재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역시 추억을 향수하게 했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산뜻함이 느껴진다. 영화 끝부분의 비가 내리는 장면 때문일까?
우리의 새학기가 3월에 시작되는데 비해, 일본은 4월에 시작된다. 그래서 영화제목이 4월 이야기. 대학입학하고, 이사도 와서 혼자 자취하게 되는 우즈키(마츠 타카코)의 모습이 혼자살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공감대가 형성될 거라 생각한다. 특히 내가 본격적으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우즈키의 심경이 완전 이해됐다!
Before Sunrise
대학에 들어가면 당연히 여행을 많이 할 수 있고, 연애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준 영화! 우연히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거란 환상을 심어준 영화! (그러나 현실은 아흑!)
왼쪽 장면은 까페에서 전화놀이하는 장면. 역시 연애를 하면 저런 시덥지 않은 장난을 치게 되더라. 그리고 저런 장난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면 사귈 수 없음!
오른쪽 장면은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레코드가게의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서로를 몰래몰래 훔쳐보는 장면. 시선이 빗나가는 그 장면이 너무나 맘에 든다. 아마 둘 다 상대가 자신을 쳐다보는 걸 의식하고 있었을 거다. ㅋㅋ
daydream delusion
limousine eyelash
oh baby with your pretty face
drop a tear in my wine glass
look at those big eyes
see what you mean to me
sweet cakes and milkshakes
I'm a delusion angel
I'm a fantasy parade
I want you to know what I think
don't want you to guess anymore
You have no idea where I came from
we have no idea where we're going
lodged in life like branches in a river
flowing downstream caught in the current
I'll carry you
you'll carry me
that's how it could be
don't you know me
don't you know me by now....
강가를 걷던 두 주인공이 거리의 시인에게 받은 시
-다이어리에서
와니와 준하
김희선 때문에 안 보려고 했는데,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봤었다. 과연, 예쁘고 순정만화 같은 영화였다. 음악도 좋고 >_<
굳이 털털한 척 하거나, 꾸며서 명랑쾌활한 연기를 보여주던 김희선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기뻤다.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게 많은데, 조승우(영민)가 김희선(와니)의 눈썹을 그려주던 장면. 와니랑 준하가 길에서 싸우는데, 길가던 고양이(?)가 차에 치었던 장면. 준하가 집을 비우면서 냉장고에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붙여놓았던 장면→와니가 준하의 빈자리를 느끼는 장면..등
(준하처럼 착한 남자랑 사귀면 참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사람은 없을 거 같아)
미술관옆 동물원
이 영화는 내 친구와 이름만 같은 주인공 춘희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좀 더럽고 게으르지만, 하는 짓이 완전 귀여운 춘희. (내 친구랑은 180도 다르다)
물을 컵에 안따라마시는 것도 귀여웠고, 남자 만난다고 목욕탕 가는 것도 귀여웠고, 옆의 사진처럼 우산 말린다고 햇볕나는데도 그냥 우산을 쓰고 가는 것도 귀여웠다.
항상 몇년 뒤의 내 나이를 생각해보면 끔찍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됐을 때 담담할 수 있는 건 나이를 한 살씩 먹어서 인가 봐. 그럼 그 다음 나이가 그리 낯설지 만은 않거든.
-춘희의 대사 중에서
봄날은 간다
어릴 때는 영화 속 상우처럼,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사랑도 당연히 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향으로 변하느냐의 차이지만. 사랑이 어느 순간 집착이 되고, 미련이 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보고 나면 마음이 스산해지는데, 영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무래도 영화 속에서 들렸던 대나무 숲의 소리, 바닷가에서 파도 부서지는 소리, 갈대밭에서 나는 소리가 마음에 남아서 그런 거 같다.
어이구야...이로써 2주간의 대작(?)이 끝났다.
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베스트 영화가 하나둘 더 늘어난 거 같다.
이거 다 읽으신 분에게 감사의 상품이라도 드려야되는 거 아닐까 몰라. ㅋㅋ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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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별생각없이 하게 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철없을 때 동생이랑 했던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람과 결혼하려면 시부모가 없어야한다는 것과 우리 집처럼 딸 밖에 없는 집은 데릴 사위를 데려와야한다는 것. 전자는 나보다 동생이 강하게 이야기했었는데, 현재 기혼자인 동생을 미혼인 내 입장에서 바라보면,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시'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자기 편이 되주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못된 사고방식 중 하나가 자기 식구는 안되고 남의 식구는 괜찮다는 것. 이건, 요즘 회사 여자애(동갑) 보면 드는 생각이다. 남자쪽도 아들 하나 딸 하나고, 여자쪽도 딸 하나 아들 하나인데, 시댁에서 아들 가진 유세를 엄청 하기 때문이다. 자기네도 딸이 있으면서 어쩜 그렇게 생각없는 언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고, 내 미래에 대한 이야기.
나는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그리고 당연히 이름을 대면 모두들 아는 회사에 다니면서 소위 말하는 '커리어 우먼'이 될 줄 알았다. 대학까지는 쉬웠(?)는데, 그 이후는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는 내 자신이 생각보다 '야망'이라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뭐랄까 20살이 되면서, 사춘기가 끝나면서 인생은 착착 자기 마음대로 풀리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만사형통이 되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달까. 아니면 그 모든 욕심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아니면 어른들 말대로 사는 게 지겨워졌던 걸까.
나 자신의 예상과는 빗나간 현재를 살고 있지만, 예상대로 되고 있는 것도 있다. 과거에 동생은 나에게 언니는 혼자서도 (평생) 잘 살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썩을 것, 대놓고 저주를 해라, 흥!!)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어릴 때부터 딱히 결혼을 해야겠다든가, 동생처럼 부잣집에 시집가겠다든가, 하는 의지를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동생의 예상대로 나는 지금 혼자 살고 있지만, 철저하게 내 한 몸으로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치만, 나는 사실 처음부터 이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가족들하고 같이 살아도 워낙에 제멋대로 살았고, 누가 뭘하든 상관않고 혼자서도 잘노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독립된 시스템(?)을 갖게 된 나는, 혼자 사는데 있어서 어떤 부자연스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지사. 아, 물론 밤에 무섭다거나, 같이 밥먹을 사람이 없는 거, 집안일을 나눠서 할 수 없다는 것 등의 불편함은 있었다.
근데 이거 내가 인간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인간이 아무리 사교생활을 좋아한다고 해도 타인과의 거리를 두기를 원한다고는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단순한 거리가 아니고 나만의 틀을 깨고 싶지 않은 거 같아서. 과거를 훑어보아도 내가 남에게 맞추기보다는 남이 나에게 맞춰준 경험이 많다. 결국 나는 내 틀을 깨는 것도 싫고, 누군가의 속박이나 간섭도 받고 싶지 않은 걸까? 과연 지금 또 예전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을까?
위는 며칠전에 후배의 연애상담을 해주면서 잠깐 생각한 것(상담내용과는 관계없나?). 솔직히 말해주진 못했지만, 그 후배는 남자친구를 너무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것 같았다. 물론 그 남자애가 주변에 여자들도 많고, 여자들한테 잘해주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서 본인이 미리 단속하려는 건 알겠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가 아닐까. (이것도 남이야기니까 말할 수 있지, 나였어도 별 다르지 않았을 거 같다.)
후배의 말하는 요점은, 본인은 그 남자애 만나기 때문에 다른 남자친구들도 안만나고(만나고 싶지 않고), 되도록 그 남자애와의 시간을 우선순위에 두는데, 상대방 남자애는 그만큼 하지 않는다는 것. 즉, 준만큼 받고 싶어하는 거다. 본인이 다른 남자 안만나니까, 상대도 다른 여자 안만났으면 좋겠고, 자기를 1순위로 뒀으면 좋겠다는 것. 후배가 질투도 엄청나서 남자친구가 TV에 전지현 보면서 예쁘다고 하면 화가 난다고 한다. 후배 왈, '솔직히 왜 자기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냐고 말하고 싶었다'라고. 과거 내 경험(주로 내가 잘하던 짓이었으므로)으로 남자친구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줬는데, 후배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연예인 좋아하는 거랑 자기 남자친구가 여자들 가슴이나 몸매보면서 침흘리는 거랑은 다르다나? (뭐가 달라?)
아무튼, 내 생각은 그랬다. 원래 인간은 하지 말라고 하라면 더 하고 싶은 거고, 특히 남자들은 여자보다 정신연령이 낮으니까 여자친구가 심각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계속 압박을 주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같이 고민하고 이해해주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가 화내는 것만 기억하고, 결국엔 그냥 생각하는 것 자체에 싫증내고, 여자에 대해서도 질려버린다고. 아 물론 이건 성차별적인 게 아니라 인간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용의 본질보다 감정 자체에 대한 자극만 기억하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그 후배가 취할 태도는 초연해지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관심없어하거나 같이 즐기거나.
그런데 그 후배는 내 충고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 나도 머리로는 위의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을 거 같지만, 감정이란 묘한 것이 냉정을 잃게 하지. 그렇지만, 후배가 말한 것 정도는 그냥 넘겨줘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무려 서양사람과 사귀려면 말이다. 이것도 편견인가?음..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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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된다..
걱정이 되는 일은 제 일은 아니고요.
저랑 친한 동생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요..
저같은 경우는 어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솔직히 아버지가 안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가 안계신다...고 생각해보니까 굉장히 엄청난 일인 거에요.
상상도 할 수 없고, 상상하기도 싫달까요. 그렇지만,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쩌면 저는 그냥 씩씩하게 잘 살 수도 있을 거 같거든요. 왜냐면 저야 대학입학때부터 어머니와 따로 떨어져 살았으니까요. 연습기간이 있었달까요.
그런데 그 친구는 외동딸이고, 지금까지 쭉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니까 아마 더 힘들고 아프겠구나...싶었어요. 지금은 한고비 넘기셨다고 하는데 거동을 못하신다고 하니까 많이 걱정이 되네요.
주말에 병원에 찾아가보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오지 말라네요.
제가 걱정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워낙에 집안이야기를 잘 안하던 친구가 지난밤에 갑자기 울면서 전화를 해서 마음이 심난했어요.
이웃분들에게까지 심려를 끼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요..죄송하네요, 포스팅하지 말 걸..
아무튼 그냥 마음이 좀 안좋아서요..에휴, 사는 게 이런 건가요..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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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왜 오빠라는 말에 집착하는가?
나는 또 왜 이렇게 오빠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가?
내 평생 오빠라고 불러본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어릴 때는 오히려 오빠라는 호칭에 대해 부담이 없었다. 내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친척오빠나 동네 오빠들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 호칭에 대한 어떤 의미 부여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졸업하고, 여고에 들어가면서부터 오빠라고 부를 일이 없어졌다. 동네 오빠들하고는 예전처럼 놀 일이 없었고, 아는 남자 중에 나보다 나이많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 오니, 오빠들이 많아졌다. 흔히 선배오빠라고 부르는 이 사람들. 그러나 대학시절, 술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 이들과 친해질 일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사회성도, 사교성도 젬병이었던 나에게 오빠라 부르며 밥을 사달라는 둥의 애교있고 귀여운 신입생을 연기하는 것은 무리였다.(아니, 정확히는 싫었다.)
그 후에도 학교나 회사 등에서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날 일이 있었지만, 호칭은 생략한 존댓말을 썼고, 회사에서도 '~씨'라고 부르는 일은 있지만, 절대로 오빠라고 부르는 일은 없었다.
여태껏 내가 오빠라고 불렀던 사람은 정말 편한 사람, 친오빠같은 사람일 경우이다. (사귀었던 사람 중에도 나이 많은 사람은 없었다.) 친오빠같지도 않은 사람에게 왜 오빠라고 불러야하지? 나는 이미 다 큰 성인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둘 다 성인인데, '~씨'라고 부르는 것을 왜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왜 굳이 오빠라고 불러야하지?
남자들은 오빠라고 불러주는 게 그렇게 좋은가?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상대가 좋다는데 불러주면 그만인 일이다. 근데 나는 그게 싫다. 오빠라고 부르면서 기대는 것도 싫고, 그렇게 불러주기 때문에 어떤 보호본능이나 지켜줘야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도 싫다.
비록 내가 불완전하고 덜 성숙된 인간일지언정, 나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이다. 서로서로 어려울 때 기대고 힘을 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여자는 약하고 남자는 강하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남자는 여자를 지켜줘야 한다' 는 식으로 서로의 관계를 규정짓고, 권력화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등하면서 조화로운 관계가 되어야한다. 남녀의 역할을 규정지어서, 유연하고 자유로운 액체가 아닌, 고정되고 속박된 고체같은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현재는 가족이 점점 분리되고, 개인주의가 일상화되어가는 시대이다. 옛 것의 좋은 점을 따르는 것은 좋지만, 발전 가능한 관계의 변화는 받아들여야 한다. 고인 물은 언제나 썩는다. 흐르는 물이 되어 드넓은 바다로 갈 수 있는 멋진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도 연애의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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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님의 포스팅을 보고 나의 자신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대한민국의 여성 평균수명으로 보아서는 수명의 1/3 정도가 지나간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과연 나는 자신감이 백개였던 적이 있었나? 벨로님처럼 어디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것 자체가 있었나 싶을 만큼 내 인생과 자신감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거 같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숨김으로..
more..
일단 성격적으로 볼 때도 어릴 때의 나는 낯 가리고, 숫기도 없고, 뚱한 성격의 어린이였다.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내가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고, 대부분 다른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어줘야 조금 얘기하는 정도의 성격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4~5학년 이전까지 나는 발표하는 것도 싫어하고, 선생님이 뭘 물어보면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일이 없었던 거 같다. (자신감10개)
어린이 시절에는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시골 학교에서 해봐야 얼마나 잘했겠냐만), 어른들은 '얌전하고 공부 잘하는 성실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 선생님도 그런 이유로 나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대회에도 내보내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선생님의 배려로 인해 내 안에 자신감이란 녀석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한 것 같다. (자신감20개)
중학교 때도 그닥 자신감은 없었고, 멍석을 깔아줘야 좀 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주춤하던 나의 자신감은 아마 중2, 3학년때 담임선생님(같은 분)의 영향으로 크게 향상했던 것 같다. 뭐랄까, 사춘기 시절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마음을 열게 해주셨달까? 내가 왜 그때 그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생님 덕분에 세상을 좀 더 밝게 보게 된 것 같다. 나의 자신감은 성격과 함께 변화되었는데, 긍정적, 적극적, 사교적인 성격으로 변화해가면서 자신감도 올라가게 된 것 같다. 점점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지고(여자애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거 싫어했음), 모든 것에 대해 비딱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자신감60개)
그러나 제 버릇 어디 가랴. 고등학교때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자신감 60개의 인생은 계속되었다. (아마 이때 내 지금 성격의 90%가 완성된 듯) 그 예 중 하나는, 장래희망을 선생님이나 공무원으로 쓴 것. 어릴 때는 선생님이 좋아서 되고 싶었는데, 사춘기를 거치면서 '선생'및 '학교'에 대한 반감이 생겼고, 그 후에는 딱히 되고 싶은 게 없는 와중에 어머니께서 여자 직업으로는 공무원이 최고라고 해서 그렇게 썼다. 즉, 장래희망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원하는(희망) 것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희망이었달까. (여전히 60개)
고3무렵. 수능이 끝나고 대학원서를 쓰기 시작할 때, 담임과의 사이가 안좋아서(찍혀서) 담임의 관심을 못받고 있었는데, 수능 점수가 평소 성적보다 잘 나오는 바람에(?) 담임은 '그 동안 왜 공부를 안했냐', '평소에 점수 좀 잘나왔으면 교장추천으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텐데..' 등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성적과는 반대로 재수를 하기 싫은(할 수 없는) 나는, 성적보다 등급이 높은 대학에 써달라고 조르는 아이들과는 반대로, 성적보다 낮은 등급으로 써줄 것을 요구했다. 하여간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여 원서 쓰고 들어간 학교가 내가 졸업한 학교다. 전공 선택에 있어서도 나는 딱히 원하는 게 없어서 단순히 어문계가 좋으니, 점수대로 합격할 것 같은 곳으로 쓰자고 했던 나다. (자신감45개)
그렇게 어찌어찌 대학에 들어왔는데, 우리 학교 특성상, 귀국자녀(외국에서 살다 온 애들)와 외고 출신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신입생 수련회에 갔던 날이 기억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영어와 일본어. 뽀얗게 화장을 하고 구두를 신고 차려입은 여자애들. 청바지에 떡볶이 코트(더플코트)를 입고 갓 상경한 나와는 너무나 비교되는 모습에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어디 한군데 소속되거나 몰려다니지 못하고 이른바 '아웃사이더'로 분류된 그룹의 일원이 나였다. (자신감30개)
물론 학과 공부도 따라잡기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배운 아이들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의 실력차가 너무 극명했고, 교수들은 하던 대로 따라올 학생은 따라오고 못 따라오는 학생은 방치하는 현실. 술도 싫고 단체활동도 싫었던 나는 차라리 공부를 선택했다. 아마 1~2학년때 제일 열심히 공부했을 거다.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몰려다니는 친구들도 생기고, 혼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혼자 노는 게 제일 편했던 거 같다. (아, 그리고 대학와서 인터넷 세계를 좋아하게 되었다. 익명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피곤하거나 수고스럽지 않았으니까.)
4학년때까지도 딱히 자신감이 줄거나 늘어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 나의 자신감은 점점 감소했다. 남들 알만한 곳에 두어번 원서를 냈었다. 서류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그래 적어도 이력서 100개는 써야한다니까, 하면서 몇 번 더 보냈다. 죄송하다는 메일이 왔다. 그 후로 대기업에는 원서를 넣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된다는 생각에 일부러 중소기업에 넣었다. 대학 원서접수때처럼 붙을 만한 곳에만 썼다. 비정규직에 계약직 인생이었다. (자신감 15개)
눈을 더 낮춰서 이력서를 써보니, 여기저기 면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리저리 떠돌다 지금 회사에 들어온지 2년. 지금 회사에는 루꼴라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자신감은 35개 정도로 되돌아왔다. 실상, 회사에서보다는 과외활동(부업?)에서 얻는 자신감이 크다. 어디 가서 일본어 잘한다고 왜 그런 회사에 있냐는 소리 들으면 자신감이 50개가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백개였던 적이 없다. 워낙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으니까. 혹은 스스로 자신감에 점수가 후하지 않아서인 걸까?
자신감이 10개인 나도 자신감이 50개인 나도 역시 나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자신감이 더 늘어나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감이 많건 적건 남에게 피해 안주고, 나 자신도 덜 상처받는 인생이 되었으면 하는 거다.
참, 나이 먹을 수록 목소리도 커지고, 고집도 세지고, 생각도 굳어지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 역시 나이다. 흔히 하는 말마따나, 내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누가 나를 인정하겠는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반성할 건 좀 반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론은 뭔가 공익광고적인??....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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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자신이 바닷가에 있는 작은 조개껍데기라고 한다면,
모래바닥은 차갑고 머물러 있기에 단단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짓밟고 있지만,
그래도 한번 자리잡은 바닷가에서 정붙이고 살아보려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고, 심지어는 나를 파내려고 한다면,
그럴때 이미 나에게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잔잔한 파도물결까지 일렁여준다면,
물론, 그 파도가 나를 어느 곳으로 이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그때 나는 파도를 타보는 것이 나을까,
파도물결을 무시하고 험한 모래 바닥에서 버티는 것이 나을까?
나는 마음 붙이고 잘해보려했는데, 주변에서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이게 내 운명인가?
스물 아홉. 무언가 결정해야하는 결정적인 시기.
마치 운명처럼 나를 이끄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제 그만 버티라는 신호같다.
아, 턱이 또 아파온다..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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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네멋대로 행복하라
지은이 : 박준
펴낸이 : 삼성출판사
(어라? 이거 삼성출판사네! 삼성그룹 계열인가? 음...;;)
여행관련책을 읽고 싶어지는 시기가 있는데,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몸이 메여있을 때이다. 주로 연초, 연말이나 7~8월쯤. 아! 봄도 좀 그렇다. (←뭐냐 결국 안 떠나고 싶을 때가 없잖아!ㅋ)
하여간 그럴 때는 여행관련서 사재기를 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런 건 아니었고. 춥다고 도서관에 안가서 그냥 사서 보려고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다가 이 책이 위시리스트에 있길래 덩달아 산 책이다. 사실 '온더로드'는 여러면에서 굉장히 좋았었는데, 이번 것은 서점에서 봤을 때 그리 끌리지 않았고, 또 요즘 넘쳐나는 뉴욕여행기(뉴욕 붐이야?) 속에서 이것도 장삿속으로 낸 책인가..싶어서 읽을 마음이 없었다. 그래도 적어도 엄정화가 쓴(?) 뉴욕여행기보다는 낫겟지..싶어서 그냥 사버렸다.
일단은 전처럼 사진과 글이 잔뜩 들어있었지만, 역시 흔해빠진(사진으론 많이 봐온) 뉴욕이라 그런가,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더라. 물론,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명소는 현지인들은 안가는 명소일 뿐이다..는 등의 좀 색다른 면을 알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여행기(記)나 꼭 가봐야할 곳, 쇼핑할 곳 등을 알려주는 다른 여행관련책과 달리 인터뷰형식을 유지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다만, 온더로드는 그야말로 지나가는 사람 혹은 지나가다 머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다면, 이번 네멋..은 현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애환 이야기가 많았달까.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값을 구하기 위해 일한다는 점은 암울했다..
하여간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아무래도 속편효과인가?), 여타의 여행관련책과는 달리 특색있는, 읽기 좋은 책이었다. (어제 잠도 안왔지만 읽다보니 다 읽고 싶은 욕심에 늦게 잤다. 눈 아프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미국 자체를 별로 가보고 싶어하지도 않고, 뉴욕이 나온 드라마는 많이 보지만, 딱히 가봐야겠다(or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해서, 그닥 재밌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족)
-그리고 표지커버를 펼치면 뉴욕 지도다.
-편집도 좀 걸렸다. 정신없달까...사진위 글이 꽤나 정신산만해보였다..
-작가가 파리에 갔으면 좋겠다. 뉴욕보다는 차라리 파리에 대한 책을 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
(역시 개인적 취향 차이?)
★파리여행기 재밌는 거 아시는 분 추천 바람!ㅎㅎ★
<밑줄긋기>
아, 이 남자면 평생을 같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남자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거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만나는 게 쉽지 않다기보다 내가 만난 남자에게 난 당신과 내 남은 삶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거야.
밥을 굶는 그런 고비를 어떻게 넘긴 거죠?
열심히 일 찾아다니고 버틴 것밖에 없어요. 학교 운동장에 가서 공 열심히 던지고.
무슨 말이에요?
사는 게 하도 힘드니까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야근이 끝나고 집 근처에 잇는 학교에 가서 공 던지는 연습을 계속 했어요. 그게 나한테는 집중력을 높여주는 훈련이었거든요. 공을 던지면서 어떻게 해서든 어려움을 뚫고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거죠. 그런 자기 주문이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던 거 같아요.
행운 같은 건 나와 인연이 없어요. 꾹 참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수밖에 없어요. 한때는 너무 힘드니까 원통하기도 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게 정상이잖아요. 뭐든지 쉽게 이루려는 사람보다 이렇게 나처럼 사는 게 정상이잖아요. 누가 날 구해줄 것도 아니고, 내가 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니 한순간에 뭘 탁 터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계속 열심히 사는 거죠. 그러다보면 조금씩 진전하는 게 느껴져요.
무모함 속에 길이 있다. 무모하기 전에는 갖지 못했던 에너지를 무모하게 걸어가는 길 위에서 얻을지도 모른다. 무모하게 걷다보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 열린 길이 당신을 인도한다.
우리는 왜 그리 남의 시선을 안고 살아갈까? 삶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각각의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나의 가치, 하나의 타입만 존재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재미없지 않은가. 삶은 선택이다. 사회적으로 평범한 삶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그 삶이 모든 사람이 걸어가야할 삶은 아니다. 행복한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잇다면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 인생은 오로지 당신 것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온전한 당신 삶을 선택하고 순간순간 즐겁게 사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행복과 안정적인 삶은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데서 온다.
Posted by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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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도저히 걔 때문에 좋은 마음이 안생긴다.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짜증이 난다.
회사 때문에 걔 때문에 짜증내고 있는 것도 싫다.
그런 생각하고 있는 내 시간조차 아까워.
에라이~~!
나 결국 때려쳐, 관둬~하면서 여기 계속 다니려나?
아, 정말 그렇게 떠넘기고 싶으면 인수인계 확실히 해주라고. 정식 문서로 남기고. 어영부영 일 시키지 말란 말야! 너만 넘겼다고 하면 다야? 내가 받은 게 없는데? 장난하니? 아, 진짜 확!!!!
몇번 말했지만, 내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귀찮고 복잡한 일을 나한테 떠넘기는 거다.
그러면서 급여를 올려주지도 않고. 나원참.
정말 슬프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모든 원인이 걔가 어떤 특정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래서 자꾸 입으로 내뱉을 뻔한 말이 '너는 좋겠구나'이다.
'너는 좋겟다. 하기 싫은 일 남한테 떠넘길 수 있어서.
너는 좋겟다. 그렇게 쉽게 포기해도 손해보는 거 없어서.
너는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도 하니까.
너는 좋겠다. 가만 있어도 좌우에서 너를 follow-up해주니까.
너는 좋겠다. 이런 모든 일들이 쉬워서..'
오늘은 눈물이 막 쏟아질 뻔 했다.
그자식이 '억울하면 항의를 하던가.'라고 말해서.
그래. 나는 항의도 못하고 뭐라 말도 못한다.
너처럼 쉽지가 않아서 더 억울하다.
이런 게 세상의 시스템인가.
Posted by 미즈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