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연애질도 502호 만큼 하면 503호 이사간다.>
지금의 집은 5층. 경관도 훌륭하고, 햇살도 훌륭하고, 입지조건도 훌륭하다. 방세가 비싸긴 했지만, 지은지 5년밖에 안된 건물이라 무엇보다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다. 5층이라 운동이 되긴 하지만, 쓰레기(특히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가는 것은 귀찮긴 하다. 지난번 집보다 방이 넓지만, 구조상 원룸이라 내부에 있는 보일러실의 소리는 문을 닫아도 요란하다. 그러나 이런 환경들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쓰레기는 어차피 자주 안갖다 버리니까 운동이다 생각하고 하면 되는 것이고, 보일러는 되도록 안틀거나 참으면 되는 거고.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웃집. 이웃집이랄까 앞집인데..각 층은 4호(4가구)로 구성되어있는데, 우리 층에서 내가 503호, 옆은 504호, 현관문이 마주보는 앞집은 502호, 그 옆은 501호.
502호의 존재를 아는 데는 그닥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사 온 첫 날. 현관문 앞 복도(+계단)에 50리터 쓰레기 봉투가 놓여있었다. 이사오는 날엔 관리인 아저씨가 같이 왔는데 쓰레기를 보고는 뭐라고 한마디 하셨다.(전라도 분이시라 말투는 화내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지만) 이사온 날부터 주욱 그 쓰레기봉투는 치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쓰레기봉투는 여매지지 않은 상태라 그냥 내려다보면 502호가 뭘 먹고 사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인스턴트 카레, 김, 치킨 등. 그것들과 함께 눈에 띈 건 맥주병. 맥주병은 갈수록 늘어서(10개이상은 안 늘어났지만) 무슨 도미노 퍼레이드를 보는 것만 같았다. 참다못한 나는 관리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서 '누군가 쓰레기를 계속 내놓으며, 그 속에 음식물(치킨)쓰레기가 있어서 벌레가 꼬이니, 말 좀 해달라' 고 부탁을 했더니, 아저씨 왈, '그거 502호일텐데..'라고 하시며 말해주겠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바로 전화를 하셨는지 502호의 주인공이 전화받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 나와서 전화를 받아서 다 들렸음)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재빨리 반성하고 시정하지 않는다는 것. 예상했지만,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쓰레기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현재까지 계속, 쓰레기는 사라졌다가 다시 쌓이는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통화소리가 들린다. 원룸건물의 구조상-현관문과 화장실문 외에 방문이 없기 때문에-복도나 계단에서의 소리가 잘 들리기 마련이다. 계단을 올라오는 구둣발 소리는 논외로 치고, 말소리는 엄청 잘 들린다. 그건 아마 입주자 모두가 알고 있을 거다.
(여기서 잠깐 비교를 위해)전에 살던 집은 일반주택이었고, 옆집에 애가 셋이나 있었는데도 옆집한테 시끄럽다고 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조용하기도 했었고, 옆집 아주머니가 상식과 매너를 잘 지키시는 분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생긴 것도 참하게 생겼고, 하는 행동이나 말도 반듯한 이미지였다. 애들은 밤10시만 되면 재웠고(그 시간 이후에 애들 떠드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음), 소리지르고 뛰어노는 낮시간에는 항상 '나가놀라'고 하셨다. 애들 역시 착해서 전기요금을 드리러 현관문을 두드리면 아이 셋이 모두 나와서 인사를 했다. 물론 애들이 몹시 귀엽게 생기기도 했었다. 옆집 아주머니와는 한번도 소음이나 기타 생활적인 문제로 갈등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무지 살기 편했다. 혼자 어둡게 사는 나에게 가끔 먹을 것도 주셨고.
하여간, 전에는 옆집이 좋았다.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녔어도 지난 번 이웃같은 집이 없었다.
다행히 이번 집(502호)이 최악은 아니다.(-_-;;) 하지만, 502호의 남자는 짜증이 난다. 내가 들으려고 들은 것도 아니고, 전화 통화를 왜 그렇게 복도에서 하시는지. 날이 추워지기 전에는 옥상에서 하셨는지 안그러더만(가끔 계단에서 현관으로 들어가면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요즘은 추워서인지 계단에서 통화를 하시나보다.
*참고로 청력이 좋은 건지, 비교적 목소리는 잘 알아듣는다. 특히 라디오 같은 것.
근데 휴대전화를 통해 듣는 목소리는 잘 못알아듣기도 한다.
아! 그 얘기를 하기전에...
어느날 밤, 노랫소리가 들렸었다. 처음 듣는 노래인 건지, 무슨 노랜지는 모르겠고 남자 목소리. 노래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잠이 깼다. 잠에 있어서 빛과 소리에 민감한 나는 잠귀가 유난히 밝다. 물론, 전철에서 자거나 피곤해서 잘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도 한다. 하지만, 누워서 본격적으로 자는 경우에는 빛이 없어야하고, 소리도 나서는 안된다. 껌껌하고 조용한 가운데 수면을 취하고 있는데, 노랫소리가 나의 고막을 두드렸다. "응? 노래연습을 하나? 뭐지?" 싶었는데, 그게 통화중에 노래를 부른 거란 걸 알았다. 아, 연애질이시군~. 노래는 길지 않았고 그땐 통화내용이 그리 많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좋을때다' 이러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은 통화소리가 오래 들리기 시작했고, 지난주에는 밤새, 새벽내내 들렸다. 통화가 밤중에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에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계속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면 아무리 피곤해도 결국은 깨버리는 나는, 자다깨다를 반복적으로 하다 새벽5시가 되었음을 알았다. 조금만 더 참자...싶었는데 목소리는 더 잘들리는 게 아닌가..아마 싸우는 거 같았다. (←내가 완전히 잠이 달아났다는 얘기) 목소리상 역시나 502호의 그 녀석인 듯 싶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5시반에 현관문을 열었다.
(눈꼽이고 머리카락상태고 전혀 신경쓰지 않은채)
503호(나) : 저기요, 소리 다 들리거든요.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502호: 네, 죄송합니다.
502호의 말과는 달리 한시간 후 다시 통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윽~~~~!!!! 이런 썩을 것들! 이런 삐리리리리한 것!!니들이 연애질을 하건 뭘하건 난 관심없으니까 잠 좀 자자고!! 마구마구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걸 참았다. 정말로 피곤해서 참았다. 새벽부터 말싸움하기 싫었으니까. 그날 502호의 말다툼은 나의 평소 기상시간 30분 전인 6시반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이번주. 또 밤중. 이번에는 여자 목소리도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오호라~이제는 집에까지 와서 싸울 건가보군'라는 생각이 스쳤다. 역시나 나의 예상은 적중. 아마 밤 1~2시까지 둘이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던 거 같다. 다행히 이번엔 복도에서 그러진 않았고, 지들 집에서 그러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린 것. 대화내용까지는 자세히 못들었지만, 나름의 분석결과 남자가 말이 많은 스타일인 거 같다. 여자가 한마디하면 남자가 서너마디하는 스타일. 남자가 원래 말이 많은 게 아니라면, 뭔가 죄를 지어서 용서를 구할 일이 있었거나. 그리고 기본적으로 남자가 말이 많으니까 지난주에도 그렇게 밤새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거라고 본다. 남자가 말많은 타입이 아니라면, 내가 잠이 왜 깨겠는가..
정말 누구말마따나 체력도 좋다. 나는 아무리 죽어라 연애를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었어도 밤새 통화를 해본 적은 없는데. (아, 물론 나도 전철에서 통화하고 걸으면서도 통화한다.) 음, 연애질하면서 밤새 통화한다는 문제는, 내가 전화통화 오래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고, 얼굴 보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더 좋아하는 선호도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하여간 502호가 체력이 좋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 술을 자주 마시거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내 바람은 (이제는) 단지 하나.(쓰레기는 포기했고) 그냥 조용히 잘 수 있게 해주는 것.
제발 좀 전화는 니네 집에서 하고, 밤에는 조용히 해라. 기본 상식은 지켜라.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밤에는 청소기 돌리면 안되지 않겠니? 밤 10시, 아니 최소 12시 이후에는 조용히 해줘야하지 않겠니?
502호야, 니가 이럼 난 또 괜한 관리인 아저씨만 피곤하게 할 뿐이야.
바라는 게 큰 게 아니잖니? 너도 니 말소리 다 들리는 거 알거 아니니?
연애? 해~ 누가 뭐래? 잠 좀 자자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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